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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하이텔에서 감명깊게 읽었던글...이 글이 영화가 되었다.



1998.7.20.월
임영윤

월말의 은행창구는 참 붐빈다.

오늘은 선명회 후원아동에게 후원금을 부치는 날이다. 그동안은 자동이체로 후원금을 냈었는데 지난달에 자동이체에서 지로로 바꿨다. 대기표를 받고서 북적대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조금은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물론, 자동이체가 편하긴 하지만......형도 나처럼 이렇게 지루해 했을까?

아마 아닐 것같다. 오늘에서야 나는 왜 형이 그 손쉬운 이체로 하지 않고 그렇게 고집스럽게 한달마다 꼬박꼬박 지로용지를 썼었는 지 형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우리 형은 언청이였다. 어려운 말로는 구개열이라고도 하는데 입천정이 벌어져서 태어나는 선천성 기형의 한종류였다. 세상에 태어난 형을 처음으로 기다리고 있던 것은 어머니의 따뜻한 젖꼭지가 아니라 차갑고 아픈 주사바늘이었다.

형은 태어나자마자 수술을 받아야 했고 남들은 그리 쉽게 무는 어머니의 젖꼭지도 태어나고 몇날 며칠이나 지난 후에야 물 수 있었다. 형의 어렸을 때 별명은 방귀신이었다. 허구헌 날 밖에도 안나오고 방에서만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었다. 하기는 밖에 나와봐야 동네 아이들의 놀림감이나 되기 일쑤였으니 나로서는 차라리 그런 형이 그저 집안에만 있어주는 게 고맙기도 했다.

나는 그런 형이 챙피했다. 어린 마음에도 그런 형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형은 국민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두번째 수술을 받았다. 비록 어렸을 때였으나 수술실로 형을 들여보내고 나서 수술실 밖 의자에 꼼짝 않고 앉아 기도드리던 어머니의 모습은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형을 위해서 그렇게 간절한 기도를 올리고 있는 어머니를 보니 은근히 형에 대한 질투심이 들었다. 어머님이 그렇게 기도드리던 그 순간만큼은 저 안에서 수술받고 있는 사람이 형이 아니라 나였으면 하고 바랬던 것 같기도 하다.

어머니는 솔직히 나보다 형을 더 좋아했다. 가끔씩 자식들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시는 어머니의 말씀속에서 항상 형은 착하고 순한 아이였고 나는 어쩔 수 없는 장난꾸러기였다. "그네를 태우면 형은 즐겁게 잘 탔었는데 너는 울고 제자리에서 빙빙 돌다가 넘어지고 그랬지..."


형은 나보다 한해 먼저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수술 자국을 숨기기 위해 아침마다 어머니는 하얀 반창고를 형의 입술위에다가 붙여 주시고는 했다. 나같으면 그꼴을 하고서는 챙피해서 학교에 못갈텐데 형은 아무소리도 않고 매일 아침 등교길에 올랐다. 형이 학교에서 어떻게 지냈는 지는 잘 몰랐지만 아마 고생께나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언제부턴가 형에게는 말을 더듬는 버릇이 생기고 있었다. 나는 그런 형을 걱정해주기는 커녕 말할 때마다 버벅거린다고 '버버리' 라고 놀리고 그랬다. 형이라는 말대신 버버리라고 불렀고 내딴에는 그말이 참 재미있는 말로 생각되었다. 어머니가 있는 자리에서는 무서워서 감히 버버리란 말을 못썼지만 형하구 단둘이 있는 자리에서는 항상 버버라 버버라 이렇게 부르곤 했다.

형은 공부를 잘했다. 항상 반에서 일등을 하였다. 비록 한학년 차이가 나긴 했지만 형의 성적표는 나보다 항상 조금 더 잘 나오곤 했다. 어쩌면 그런 형을 질투하고 시기하는 마음에서 더 그런 말을 쓰고 했었는 지도 모른다.


언젠가 형이 어머니에게 무진장 매맞은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국민학교 2학년때였다. 그때 나는 그당시 내또래의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한참 만화와 오락에 빠져 있었는데 항상 용돈이 부족했다. 그래서, 매일밤 어머니의 지갑에서 몇백원씩을 슬쩍 하고는 했었는데 그러다 어느날은 간크게도 어머니의 지갑에서 오천원이나 훔쳐서 (그 옛날 오천원은 참 큰돈이었다) 텔레비젼 위의 덮개밑에 숨겨 두었는데 그게 그만 다음날 아침에 발각이 되고 말았다.

어머니는 당연히 나를 의심했다. 어머니는 무서운 분이었다. 게다가 그 며칠전부터 돈문제로 고민하고 계셨던 어머니였던 지라 두려운 마음에 나는 절대 그런 적이 없었다고 철저하게 잡아 땠다. 다음에 어머니는 형을 추궁했다. 형은 처음에는 무슨 영문인 줄 몰라 했다. 찰라의 순간이었지만 나는 염치없게도 형의 대답에 한가닥 희망을 걸고 그 위기를 빠져나오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그런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형은 어머니에게 잘못했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믿었던 형이었기에 더욱더 화가 나셨고 나는 죽도록 어머니에게 매맞고 있던 형을 그저 바라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형이 그렇게 매를 맞는 모습을 보니 철없던 내마음에도 형에게 그렇게 미안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가 방을 나가버리고서 방한구석에 엎드려 있던 형에게 가까이 다가가 보았더니 형은 숨조차 고르게 쉬지 못하고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고 있었다. 그후 얼마동안은 형에게 버버리라는 말도 안하고 고분고분 지냈다. 그러던 어느날 우리 동네에 젤루 쌈 잘하던 깡패같은 녀석이 형을 괴롭히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녀석은 형하구 나이가 똑같았는데 질나쁘기로 소문난 녀석이었다. 나는 형에게 빚진 것도 있던 만큼 형을 위해서 그 자식과 싸웠다. 싸우다가 보니 그 녀석의 코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원래 애들싸움은 먼저 코피나는 쪽이 지는 것인지라 나는 기세등등하게 그 녀석을 몰아부치기 시작했는데 형이 갑자기 나를 말리는 것이었다.

나는 한참 싸움이 재미있던 판에 형이 끼어들자 화가 버럭났다. 하지만, 지은 게 있던지라 아무말 하지 않고 물러 서고 말았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 후로 그 깡패녀석과 형이 아주 친해지기 시작했다. 형은 사람을 아주 편하게 해주는 구석이 있었다. 사실 나는 형의 그런 면이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런 면때문에 내가 어머니한테 귀여움을 더 못받고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형과 그 깡패녀석의 집에 놀러간 적이 있었는데 그 녀석이 장롱 밑에서 담배갑을 꺼내더니 형하고 나한테 권하는 것이었다. 그때 담배라는 걸 처음 피워 보았다. 형과 나는 콜록콜록 대며 피웠는데 그걸 본 그 깡패자식이 좋아라 웃던 기억이 난다.


형은 국민학교 5학년때 세번째 수술을 받았다. 그후로는 입술위에 반창고 붙이는 짓은 그만두게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말더듬는 버릇은 잘 고쳐지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나는 다시 형에게 버버리란 말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TV에서 '언청이'란 말을 처음 듣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는데 얼마후에 그말이 바로 우리형과 같은 사람을 뜻하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그런 희귀한 단어를 알게 된게 참 신기했다.

그리고, 며칠 후 형에게 버버리대신 언청이라는 말을 썼다. 그 말을 들은 형은 마치 오래전부터 그말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담담한 표정으로 듣고 있더니 내 머리에 꿀밤을 먹이면서 "그말을 이제 알았구나?" 하며 웃어주었다. 웬지 그런 형에게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어 형에게 다시는 언청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그러고보면 나도 그렇게 나쁜 놈은 아니었나보다.


내가 국민학교 5학년 다닐 적 어버이날이었다. 학교가 파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어머니가 방안에서 소리없이 울고 계시는 모습을 보았다. 무슨 편지같은 걸 읽으시면서 울고 계셨다. 어머니는 잠시 후 그 편지를 어느 조금은 초라하게 생긴 핸드백안에 넣으셨다. 나는 어머니가 방을 나가신 후 몰래 들어가 그 핸드백을 열어 보았다.

그안에는 조금 빛바랜 편지봉투부터 쓴 지 얼마 안되어 보이는 편지까지 있었다. 나는 어머니가 지금 막 읽으셨던 듯한 편지를 꺼냈다. 형이 쓴 편지였다. 형이 매해 어버이날마다 썼던 편지를 어머니는 그렇게 모아놓고 계셨던 것이었다.

편지내용을 읽어보고는 나는 왜 그토록 어머니가 형을 사랑하고 형에게 집착하는 (그때 나에게는 어머니의 형에 대한 사랑이 집착으로 느껴졌다) 지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만약 내가 형처럼 태어났다면 나는 나를 그렇게 낳은 부모를 원망하고 미워했을텐데 형은 그 반대였다. 오히려 자기가 그렇게 태어남으로해서 걱정하고 마음 아파하셨을 어머니에게 용서를 빌고 또 위로하고 있었다.


어느덧 한해가 또 지나고 형은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 다음해 나도 중학교에 올라갔는데 한집에서 살고 있음에도 형과 나는 다른 학교를 배정받았다. 형은 중학교에 올라가서도 항상 1등을 했다. 나도 공부를 꽤 잘하는 편이었는데 항상 형보다는 조금 못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형이 일기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끔씩 형의 일기를 훔쳐보곤 했는데 형은 시인이었던 것 같다. 형이 지은 시는 이해하기가 참 쉬웠다. 교과서에 실린 시들처럼 복잡한 비유나 은유같은 것도 없었고 아무리 무식한 사람이 읽어도 무슨 뜻인 지 알 수 있을 그런 시를 많이 썼다. 그런데, 읽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눈물 한방울이 맴도는 그런 시들이었다. 나는 형이 썼던 시들을 참 좋아했던 것 같다.

형의 영향으로 나는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쌍밤' 이라는 문학써클에 가입하게 되었다. 연합써클이라 여학생들도 참 많았다. 한집에 사는데도 불구하고 중학교는 형과 다른 곳을 다녔는데 고등학교에서는 형과 한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나는 또 고등학교 때 갑자기 키가 부쩍 자라 형보다 10cm는 더 크게 되었다.

게다가 나는 얼굴도 어디를 가도 빠지지 않을 정도로 잘생겨서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나는 형이 불쌍했다. 키도 작지, 그렇다고 얼굴이 잘생겼기를 하나, 말을 잘하나, 형을 보며 나는 무언가 우월감같은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거에 형은 전혀 무감각했다. 마치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어느 맑은 가을날이었다. 집을 나서는데 참새 한마리가 대문앞에 죽어 있었다. 나는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다시 집안으로 들어가서 착한 일 한답시고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나왔다. 참새를 쓸어 담아 쓰레기통에 버리려고 했다. 그때 형이 대문을 나왔다.

나는 형이 칭찬을 해줄 것으로 알고 잔뜩 기대했는데 형은 모처럼 착한 일 하려고 하는 나를 만류했다. 그러더니, 손수건을 꺼내 그 죽은 새를 담더니 집뒤의 야산으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나는 학교에 늦을까봐 미리 집을 나섰다.

형은 그날 지각을 해서 운동장에서 기합을 받았다. 팍팍한 다리를 두드리며 올라오는 형에게 참새는 어떻게 했냐구 물어보니까 뒷산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고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참새를 묻고 나서 기도를 했다고 했다. 나는 내심 그깟 죽은 새한마리 땅에 묻고나서 기도는 무슨 기도냐며 그래도 궁금해 형에게 뭐라고 기도했냐구 물었더니 형은 슬픈 얼굴로 대답했다. '만약 이 다음 어느생엔가 내가 오늘의 너처럼 어느 집앞에 쓸쓸히 죽어 누워있으면 그때는 니가 나를 거두어주렴.......'


형은 고등학교 2학년 겨울에 또 수술을 받았다. 정말 그놈의 수술은 끝이 없는 것 같았다. 어머니 말로는 형의 수술비로 집한채 값이 날라갔다고 한다. 우리집은 가난했었다. 국민학교때까지는 일년에 두번씩 이사를 다녔다. 우리집을 가지는 게 소원이었다. 거기다가 형의 수술비까지 대느라 언제나 쪼들렸다. 아버지가 벌어오시는 것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어머니는 언제부터인가 돈놀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셨다. 쉽게 말해서 고리대금업이었는데 어머니는 악착같이 돈을 모으셨다. 채무자들을 어쩔 때는 참 심하다싶게 몰아부치시기도 했다. 부동산에도 손을 대셔서 지금 있는 집도 장만하시고 그러셨다. 어머니는 참 지독하셨다. 그리고, 너무 돈에 집착하고 그랬다. 극장도 한번 안가셨다. 극장가서 영화볼 돈 있으면 차라리 맛있는 걸 사먹는 게 낫다는 주의셨다.

그런 어머니를 보며 형은 항상 마음아파했다. 자기때문에 어머니가 저렇게 되셨다는 것이었다. 형은 어머니에게 누가 될만한 일은 한번도 해본 일이 없었다. 적어도 내 기억에는 그랬다. 하지만, 그런 형에게도 어머니에게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하나 있었다. 형은 거의 돈을 쓰지 않았는데 그런 형도 돈을 쓰는 곳이 한군데 있었다. 길에서 거지를 보면 없는 돈에도 항상 얼마씩을 주고는 했다.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내가 옆에서 아무리 저런 사람들 도와줘봤자 하나 소용없는 짓이라고 설교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런 형에 대해서 어머니에게 일르면 어머니는 형을 참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는 하셨다. 돈이라는 게 얼마나 피나게 모아야하는 건데 저러느냐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형에게 항상 무서운 세상에 대해서 말하시곤 했다. 그러시면서, 말끝머리에는 항상 이런 말을 붙이셨다.

"너는 공부 못하면 시체야..." 형은 시체가 되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했던 것일까...? 그랬던 것 같지는 않다. 지금까지 형이 자기자신때문에 뭘 걱정하는 걸 본 적이 없었으니까........

나는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곁에 항상 여자가 많아서 용돈이 부족하고는 했다. 좀 부족하긴 했지만 어렸을 적처럼 어머니지갑을 뒤지진 않았다. 형이 나때문에 그렇게 모진 매를 맞았었는데 어떻게 그런 짓을 또 할 수 있겠는가?


그 다음해 겨울 우리집에 경사가 하나 났다. 형이 대학에 합격한 것이었다. 그런데, 형은 서울의 좋다하는 대학을 다 마다하고 지방에 있는 P공대를 지망해서 합격했다. 나는 참 알 수가 없었다. 서울이 얼마나 놀기가 좋은데 그 외진 데까지 찾아가는 지 이해가 안되었다.


형이 서울을 떠나던 날... 나는 그때까지 어머니가 그렇게 많은 눈물을 보이시는 건 처음 봤다. 형이 떠난 아침부터 저녁때까지 손수건이 눈에서 떨어지지를 않았다. 그런 어머니가 보기 싫어 그날은 혼자서 시내를 배회하다가 집에 돌아왔다.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형이 없어지니까 집안이 텅 빈 듯한 느낌이 들었다.

형은 자주 편지를 썼다. 그리고, 어버이날마다 선물을 들고 집에를 찾아오곤 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형은 어머니 생일날에는 선물을 하지 않았다. 꼭 어버이날 그렇게 선물을 들고 오고는 했다. 참 아직까지 말하지 않은 하나 있는데 형하고 어머니는 생일이 같다. 어머니말로는 예정일을 보름이나 당겨서 태어나면서 어머니의 생일에 태어났다고 한다.

그리고, 띠까지 같았다. 그렇게 되기도 참 힘들 거 같은데 어쨌든 형하고 어머니는 전생의 인연이 참 깊었었나보다. 형은 어머니 생일날 태어난 걸 항상 어머니에게 미안하게 생각했다. 즐거워야 할 어머니의 생일날 자신이 그렇게 끔찍한 모습으로 태어나 어머니를 슬프게 한 것이 그렇게 마음에 못이 되었었나보다. 그러고보니 형에게는 백일 사진도 없고 돐 사진도 없다.


언젠가는 형이 어버이날 어머니 선물로 비싼 지갑을 사온 적이 있었다. 어머니도 참 그 선물을 보시고는 대뜸 하신다는 말씀이 "지갑은 벌써 하나 있는데 가서 다른 걸루 바꿔올 수 없나?" 그런 말을 하시는 어머니를 보며 형은 그저 빙그레 웃기만 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 후 그 지갑을 항상 곁에 지니며 다니셨다. 마치 형의 분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형은 대학교 2학년 겨울에 또 수술을 받았다. 정말 끝이 없을 거 같던 형의 수술도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때는 집안도 넉넉해져서 형의 수술비용이 별로 부담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수술 일자가 개강과 이상하게 맞물려서 형은 할 수 없이 한학기동안 휴학을 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무척 기뻐하셨다. 형의 얼굴도 많은 수술 덕분인지 약간의 수술 자국을 제외하고는 어느새 정상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형과 이십년 넘게 살아 오면서 형의 얼굴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한편, 학력고사에 한번 낙방했던 나도 힘든 재수끝에 용케 Y대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해 3월부터 8월까지 우리집은 참 행복했다. 나는 어머니에게 어렸을 적 형이 매맞았던 사건에 대해 사실대로 말씀드렸고 어머니는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웃으시며 형과 나를 바라보셨다.

형은 밤마다 어머니가 잠드실 때까지 어깨며 팔다리를 주물러 드리고는 했다. 어머니는 나보다 형이 주물러 드리는 걸 더 좋아하셨다. 형이 안마를 해주면 그렇게 편하고 좋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아마 어머니는 사하라사막 한가운데라도 형만 옆에 있으면 행복해했을 것이다. 매일같이 웃음꽃이 피었다.


8월이 되자 형은 복학을 했다. 어머니는 떠나는 형을 보내기가 못내 아쉬웠던지 한학기 더 휴학하면 안되느냐고 형에게 말했다. 형은 어머니의 손을 꼭잡고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어머니곁에 있을 거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포항으로 떠나버렸다. 그렇게 몇달이 흐르고 있었다. 날짜를 세어보니 조금 있으면 어머니의 생일이자 형의 생일이겠구나 싶었다.


어머니의 생일이 일주일정도 남았을 때 그날은 웬지 기분이 참 안좋았다. 어머니는 나보다 더 심하게 느끼시는 것 같았다. 어머니 말씀이 마치 심장이 위로 올려붙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하셨다. 그리고, 숨을 거칠게 몰아쉬셨다. 나는 어머님이 어디가 편찮으셔서 그러는가 생각했는데 어머니는 형을 걱정하고 계셨다.

아무래도 형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루종일 초조하게 보내시던 어머니가 전화 한통을 받으시더니 금새 얼굴이 새하얗게 변해버렸다. 형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것이었다. 어머니와 나는 부리나케 형이 있는 포항으로 내려갔다.


의사선생님 말이 머리에서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소생할 가망이 없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지금까지 숨이 붙어 있는 게 기적이라고 말했다. 하얀 시트를 가슴위까지 덮은 형이 얼굴에 산소마스크를 하고 누워 있는 모습이 보였다. 형의 머리맡에 놓여진 오실로스코우프에는 간신히 이어지고 있는 형의 맥박이 보였다.

어머니는 초점이 흐려진 눈동자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시면서 한걸음 한걸음 형에게 다가가셨다. 그러시더니 떨리는 두손을 모아 누워있는 형의 손을 꼭 잡으셨다. 그 순간이었다. 연약하게 뛰던 형의 맥박이 조용히 긴 수평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마치 사랑하는 어머니를 여태 기다리다가 그제서야 안심하고 떠나는 것처럼..............


차도를 무단 횡단하던 어떤 어린 여자아이를 트럭이 덮치려는 순간 형이 그앞에 뛰어들었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여자아이는 팔을 조금 다치고 말았는데 형은 트럭에 치이고 나서 머리를 땅에 부딪히고 말았다고 한다. 어머니는 슬픔에 넋이 나가버렸는데 나는 그 순간 묘하게도 '참 형다운 최후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느님이 천사를 그렇게 오랫동안 지상에 내버려 두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한동안 하며 통곡을 하고 계신 어머니옆에 넋이 나간 채 서있었다.


그 다음 며칠동안 우리집은 무덤과도 같았다. 어머니는 음식은 커녕 물조차 드시지 않았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니 한편으로는 그렇게 떠난 형에게 한없이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어머니는 사흘째 되던 날부터는 온몸에 열꽃이 피기 시작했다. 참 지독한 열병이었다. 급히 의사를 불렀지만 의사는 영양제를 놓아주면서 환자 스스로 일어나야지 별다른 수가 없다는 말을 했다.

나는 어머니에게 산사람은 어쨌든 살아야할 거 아니냐고 설득했지만 어머니는 못듣는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르자 이제는 지쳐서 더 우시지도 못하고 그냥 멍하니 누워만 계셨다. 그리고, 밤이 되면 다시 고열에 시달리시고는 했다. 나는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마치 자신의 생일날, 아니 형의 생일날에 맞춰 돌아올 수 없는 저 먼곳으로 형을 따라 가시려는 것 같았다.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드디어 어머니의 생일날이 형의 생일날이 돌아왔다. 그날 아침 눈을 떠보니 밤새 눈이 내렸었는 지 온 세상이 하얗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와 평소 친했던 동네 아주머니들이 어머니를 위로하려고 한분 두분 모여들었다. 아주머니들은 다들 한마디씩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어머니는 눈조차 감으신 채 아무말도 못듣는 것 같았다. 나는 거의 자포자기상태로 빠져들었다. 그러던 그날 오후였다. 초인종소리가 들렸다.


나는 또 어느 동네아주머니겠거니 하고 대문을 열어주었다. 그런데 정말 태어나서 그런 광경은 처음 보았다. 수백송이의 꽃들이었다. 이제껏 그렇게 많은 꽃을 본 적이 없었다. 배달하는 사람들도 이렇게 많은 꽃을 배달해 보기는 처음이라는 말을 했다. 하얀 눈밭위에 수백송이의 아름다운 꽃들이 펼쳐져 있었다.

정말 황홀하도록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누가 보냈는가 보았더니 바로 형.이.었.다. 어머니가 어느새 나오셔서 그 광경을 보시고 계셨다. 어디서 그런 기력이 다시 생기셨는 지 애써 문틀에 의지하며 서 계셨다. 나는 형이 남긴 짤막한 생일축하메시지를 어머니에게 보여드렸다.

" 어머니,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셔야되요.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어머니 곁에서 함께 할 겁니다."


어머니의 눈가에 마른 줄 알았던 눈물이 다시 조용히 번지기 시작했다. 언제 꽃배달을 시켰는가 보았더니 자신이 교통사고를 당하기 바로 전날이었다. 생일에는 절대 선물을 하지 않던 형이.....꽃같은 것은 관심에도 없으셨던 어머니에게 이렇게 많은 아름다운 꽃들을 어머니의 생일 바로 자신의 생일에 보내온 것이었다. 그때 문득 마당에서 맴돌고 있는 참새 한마리를 보았다.

언제부터 그러고 있었는 지는 모르고 있었는데 참새 한마리가 마당에 앉아 있었다. 내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걸 알았는 지 참새는 날갯짓을 파닥거리며 날아올라 마당을 한바퀴 휘 돌더니 하늘 높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여태까지 나는 그렇게 높이 나는 참새를 본 적이 없다. 그렇게 아득히 날아오르더니 하늘 끝으로 사라져버렸다.


그날 이후 어머니는 조금씩 기력을 다시 찾기 시작하셨다. 그런데, 어머니의 눈빛이 바뀐 걸 알게 되었다. 옛날에는 항상 돈에 얽매이고 근심이 가시지 않던 어머니의 눈빛에 한없는 평화가 감돌고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결혼하시고는 나가시지 않았던 성당을 다시 다니시기 시작하셨다.

원래 어머니는 결혼하시기 전에는 독실한 천주교신자였다고 한다. 세례명인가 영세명인가 잘은 모르겠지만 어머니의 세례명이 '아네스' 였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아참! 형의 유품을 정리하다보니 형이 선명회라는 단체에 가입하여 한 어린이를 돕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 그 아이의 후원자는 바로 나다. 평생에 내가 누군가를 돕는 거 같은 걸 하게 될줄은 몰랐다.

한달에 한번씩 지로로 후원금을 부쳐주고는 한다. 그동안은 자동이체로 했었는데 그러다 보니까 내가 누군가를 후원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지내기가 일쑤였다. 그애하고 만나봤는데 그애 말이 형은 크리스마스나 그애 생일뿐만 아니라 새학기가 시작하면 학용품도 사서 부쳐주고 편지도 자주 써주고 그랬단다.

그애는 형이 참 보고 싶다며 지금 형은 어디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차마 형이 죽었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사정이 있어서 저 하늘 너머 먼 나라에 가 있다고만 말해 주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다음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뒤돌아 걸어가는데 뒤에서 그애의 목소리가 내 귓전을 때렸다.


"그렇게 좋은 형과 한집에서 매일같이 사시니 얼마나 행복하세요?"


바보같이 그제서야 나는 깨닫게 되었다. 형과 지낸 지난 이십여년간의 시간이 얼마나 행복했었는가를....나는 왜그렇게 어리석었던가... 아이에게 무어라 대답을 해주어야 할텐데 갑자기 목이 메여오기 시작했다. 그 순간 언제나 나에게 따뜻한 미소를 보내주던 형의 다정한 얼굴이 떠올랐다.

내가 매일같이 동네 아이들과 어울렸을 때 혼자서 방을 지키던 우리형은 얼마나 외로웠을까?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해 말까지 더듬어대던 우리형에게 위로의 말은커녕 그보다 더 괴롭히기만 했던 나는 나쁜 동생이 아니던가? 그런 못된 동생을 위해서 매까지 대신 맞아주던 착한 우리형...

아이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애쓰며 천천히 돌아서서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그럼 얼마나 행복했는데... 그렇게 좋은 형이 있어서 나는 참 행복하단다."

하지만, 아이와 눈이 마주친 순간 눈앞이 그만 부옇게 흐려지고 말았다.



드디어 전광판에 내 대기번호가 찍혔다. 나는 천천히 앉아 있는 은행원 앞으로 걸어가서 선명회 지로용지와 후원금을 내밀었다. 은행원은 사무적으로 도장을 몇번 쾅쾅 찍더니 영수증을 나에게 건네주었지만 영수증을 받아든 순간 나는 웬지 형의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는 듯 해서 몇번이고 영수증 종이를 어루만져 보았다.

은행문을 나서니 토요일 오후의 따뜻한 햇살이 나를 반겨주고 있다. 나는 솔직히 이 애한테 형이 했던 것처럼 할 자신은 없다. 그래도 한번 열심히 노력해볼 생각이다.



그래야 천사의 동생이 될 자격을 갖게 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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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출처 : http://www.imbc.com >




왔다 갔다 하지 말고 한 길로만 걸어요.
길을 다시 걸어요. 한쪽으로만.
근데 걷지 말고 뛰어야겠다. 이 사람.



- "한 길로만 걸어요."



상처에 얽매어서, 과거에 얽매어서,
횡단보도 가운데 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습처럼,
그렇게 헤매는 그녀에게.







'네멋대로 해라'의 인정옥작가의 새로운 드라마'아일랜드'는 이제 2편이지만, 감성적인 대사에 벌써부터 내 가슴을 설레이게 하고 있다. 그간 '파리의 연인','풀하우스'와 같은 만화같은 이야기에 질려있던 나에게 단비 같은 드라마라고나 할까? (그렇게 인기 있던 '파리의 연인'은 한편도 안봤다.)



과연 어울릴까했던 김민정(아역배우 출신의 성인영화배우역)마저도 인정옥작가의 특유대사 한껏 성숙해 보인다. 다모에서 보여줬던 카리스마 넘치던 김민준마저도 망나니 역할이 마치 예전부터 그랬던것처럼 사실감이 넘친다.



양동근을 최고의 배우로 올려놓았던 '네멋대로 해라'와 같이 여기에 나오는 배우들 하나하나가 이미 점지해두고 대본을 쓴듯 하나의 오점도 보이지 않을정도로 감성적인 대사와 연기에 1시간이라는 시간이 아쉬울정도로 나를 설레이게 한다.



이 드라마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던 이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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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T중에서 '朔と 亞紀']



"자신만 맛있는 걸 먹을 수 있으면 돼.
자신만 갖고 싶은 것을 살 수 있으면 돼.
하지만 사람을 좋아한다는 건 자신보다도 상대방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만약 먹을 것이 조금 밖에 없으면 나는 내 몫을 아키에게 주고 싶어.
가진 돈이 적다면 나보다 아키가 원하는 것을 사고 싶어.
아키가 맛있다고 생각하면 내 배가 부르고, 아키한테 기쁜 일은 나의 기쁜 일이야.

그게 사람을 좋아한다는 거야.


그 이상 소중한 것이 달리 뭐가 있다고 생각해?
나는 떠오르지 않아.
자신의 안에서 사람을 좋아하는 능력을 발견한 인간은
노벨상을 받은 어떤발견보다도 소중한 발견을 했다고 생각해.
그걸 깨닫지 않으면, 깨달으려고 하지 않으면 인류는 멸망하는 편이 나아.
혹성에든 뭐든 충돌해서 빨리 사라져버리는 편이 낫다고."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中>






지난 토요일 강남의 어느 극장전체를 휘감고 있는 포스터에 나도 모르게 시선을 빼앗긴체 한동안을 멍하게 서 있었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世界の中心で、愛をさけぶ)'는 일본에서 '상실의 시대'를 뛰어넘어 410만부가 팔린 베스트셀러였다.



이미 日TBS TV에서 7월부터 시작한 드라마는 벌써 9화를 방영했고, 10월 첫주가 되면 우리나라에서도 영화를 볼수 있다.



백혈병으로 짧은생을 마감하는 아키와 그녀를 사랑하는 사쿠의 사랑은 마치 통속적인 멜로소설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그 속에 담긴 그들의 사랑은 새파란 하늘만큼이나 순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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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9/03 00:29 2004/09/03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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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 2.0 2004-08-09 20:00]




지난달 22일 교통사고를 당해 중태에 빠졌던 MBC 정은임 아나운서가 8월 4일 오후 6시 반, 결국 세상을 떠났다. 90년대 초반부터 라디오 프로그램 <정은임의 FM 영화음악> 등을 진행하며 영화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세상을 향한 신실하고 심지 굳은 태도로 대중과 호흡했던 그다. FILM2.0은 그가 남긴 말과 글 중 일부를 발췌하는 것으로 추모를 대신한다.

안녕하세요, FM 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1992년 11월 2일 <정은임의 FM 영화음악> 첫 방송 오프닝 멘트

초콜릿과 사탕, 여자 친구, 남자 친구, 선물. 3월 14일은 그렇게 요란하게 지나갔습니다. 화이트 데이라고요.... 그렇다면, 3월 15일 지난 하루를 여러분은 어떻게 기억하십니까? 3.15 마산의거. 4.19혁명의 씨앗이 된, 우리 역사의 달력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날이죠. 35년 전 마산 땅을 울린 그 민주의 함성이 이제는 거대한 사탕 더미에 깔려 신음 소리로 변하고, 또 어느새 우리의 달력에서는 사라져 버린 날이 된 것 같네요.

<정은임의 FM 영화음악>

현대 사회에 있어서 한 마을에 이집 저집이 동시에 제사를 맞게 되는 것, 그곳은 슬픔과 공포의 역사일 따름이지요. 양민 학살이 자행되었던 거창군 신원면, 경찰 총기 난동이 있었던 의령군 궁유면, 4월 3일을 영원히 잊지 못할 제주, 그리고 아직 채 시신도 인양하지 못하고 있는 부안군 위도 마을, 모두 한날 한시에 제사를 지내야 하는 곳입니다. 아깝게 목숨을 잃은 분들의 명복만 빌 뿐입니다.

<정은임의 FM 영화음악>

자신보다 더 유명한 소피 마르소를 데리고 프랑스 대통령이 방한했습니다. 고문서 반환이라는 선물을 앞세워서요. 프랑스 대통령 최초의 방한을 환영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이렇게 반환할 수 있는 것이라면 왜 진작 돌려주지 않고 하필 고속철 TGV가 선정된 뒤일까요?

<정은임의 FM 영화음악>

홍대 앞에서 여의도까지 오는 데 2시간 30분이 걸려도 코스를 잘못 잡은 자신을 탓하기. 내가 사는 아파트가 바다 모래로 지어졌다는 것이 밝혀져도 이사 잘못한 자신을 탓하기. 다리가 무너져도, 그래, 체중 많이 나가는 우리가 너무 많이 지나갔어, 이렇게 생각하기. 앞서 말한 행동 강령은 대학민국 국민으로, 서울 시민으로 묵묵히 살아가는 데 필요한 철칙이었습니다.

<정은임의 FM 영화음악>

신청하신 곡은 영화 <파업전야>의 '임을 위한 행진곡'. 금요일 첫 곡이었습니다. 천리안으로 어느 분이 이런 글을 올리셨네요. 요즘은 신문에 읽을 거리가 너무 많아서 무엇부터 읽어야 할지 모를 때가 있어요. 국내뿐 아니라 세계가 온통 아수라장이 돼가고 있는 것 같아서 정말 슬퍼요....우리 늦기 전에 시작합시다. 한방울의 물이 모여서 거대한 폭포가 일듯 우리 한 사람의 힘이 점점 파문을 일으키면 뭔가가 변화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셨죠?

<정은임의 FM 영화음악>

꽃피는 날 그대와 만났습니다. 꽃 지는 날 그대와 헤어졌고요. 그 만남이 첫 만남이 아닙니다. 그 이별이 첫 이별이 아니고요. 제가 좋아하는 시인 구광본 시인의 시 중에서 한 구절로 오늘 시작했는데요. 시구는 그런데 저와 여러분은 반대네요. 제가 92년 가을에 방송을 시작했으니까 꽃 지는 날 그대와 만났고요. 이제 봄이니까 꽃피는 날 헤어지는 셈이 되었네요. 오늘 여러분과 만나는 마지막 날인데요. 덜덜 떨면서 첫 방송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아침 햇살이 남다르게 느껴지거나 책을 읽다 멋진 글을 발견할 때면 맨 먼저 떠올렸던 게 바로 이 시간이었습니다. 저 정은임은 여기서 인사드릴게요….

1995년 4월 1일 <정은임의 FM 영화음악> 마지막 방송 클로징 멘트

대학교 3,4학년 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사회는 또 어떠해야 하나, 그런 문제들 때문에 고민에 빠졌었거든요. 87학번이니까 그때의 친구들도 다 비슷한 고민들을 했을 것 같은데... 그런 대학 시절을 보내고 방송국에 들어오면서, 다르게 말하면 사회인이 되면서 나도 모르게 잊어버리는 생각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내 이전의 정체성과 지금 처한 환경과의 괴리에 불편해 하면서도 물들어가는... 마이클 무어 감독의 <로저와 나>는 내가 가졌던 생각들을 단번에 환기시켰고, 그것을 잊고 있었다는 생각에 그때 얼마나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는지 몰라요.

영화 월간지 'KINO'와의 인터뷰

영화를 보지 못하는 환경을 못 견디겠더라고요. 밤 12시까지 아이 뒤치다꺼리 하더라도 꼭 새벽 3시까지 영화 1~2편씩 보고 나서 잤어요. 사람이 보수화되는 가장 큰 이유가 가족이 생기는 거예요. 특히 2세가 생기면 생각이 달라지죠. 나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사는 건 할 수 있겠는데 결코 우리 아이에게는 나의 신념을 관철시키지 못할 것 같거든요. <허공에의 질주>를 떠올리며 생각해요. 아이를 어떻게 키울까. 요즘은 그게 가장 큰 화두예요.

'FILM2.0'과의 인터뷰

그때는 영화를 다루는 매체가 많지 않아 라디오 영화 프로그램의 영향력이 컸습니다. 때마침 ‘문청(문학 청년)’들이 ‘영청(영화 청년)’으로 바뀌며 문화 담론이 폭발하던 시기였고, 제 프로가 바로 그런 열기의 창구였지요. 이제는 영화 문화 환경이 많이 달라졌고, 영화가 일상인 시대를 살고 있죠. 청취자도 달라졌고 모든 매체가 영화를 다루고요. 하지만 과연 얼마나 영화에 대한 다양한 모습을 다루고 있는가는 미지수지요. 영화에 대한 다양한 욕구를 행복하게 담아낼 수 있었으면 합니다.

'문화일보'와의 인터뷰

관계자 외 출입 금지, 만차... 어떠세요? 이런 문구를 보면요. 어쩐지 뒤로 물러나고 싶지 않으세요? 하지만요, 골목 안 어느 곳엔가 숨어 있어서 간판도 잘 안 보이고 입구가 어딘지도 잘 모르겠고 그런 작은 칼국수집, 선술집에는 언제나 누구나 선뜻 발을 들여놓을 수가 있습니다. 새벽 3시에요. 아직은 어둡고 쌀쌀하죠. 이 가을 골목길 누구나 쭈뼛거리지 않고 들어올 수 있는 작지만 아주 편안한 문 열어놓고 기다리겠습니다. 어서오세요. 반갑습니다. FM 영화음악 정은임입니다. 오늘 첫 곡 들려드리겠습니다.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 래니 크래비츠, 'It Ain"t Over "Til It"s Over'.

2003년 10월 19일 다시 시작한 <정은임의 FM 영화음악> 첫 방송 오프닝 멘트

부안 내부에서는 이미 핵 폐기물 유치에 대한 찬반이 갈리고 있는데, 투표가 민주주의가 아니라 투표에까지 가도록 치열하게 부딪치는 과정 자체가 민주주의라고 오현석 씨는 생각한다고 하셨어요. 동감입니다. 오현석 씨는 예전에 영화와 관련 없는 정체 불명의 사연을 우리 영화음악 게시판에 올려도 될까요 라고 한번 질문을 하신 바로 그분이시죠. 하지만, 우리가 영화를 통해서 우리 삶의 문제를 다시 직시하고 그 힘으로 우리의 삶을 다시 돌아본다는 의미에서 영화는 삶 전반에 대한 시각을 넓혀준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글을 올려주셨던 게 기억이 나네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은임의 FM 영화음악>

삶이 위대하고 아름다운 이유는, 매일매일 일어나는 작은 일들 때문이라는 것. 이건 진짜 맞더라고요. 사는게 작은 일들, 아주 사소한 일들이 뭉쳐져서 겹겹이 쌓여서 이루어지는 거잖아요. 그 하나하나를 신경 쓰지 못하면 삶 전체를 잃어버리는 거예요. 전 그렇게 생각이 들더라고요. 요즘은요.

<정은임의 FM 영화음악>

단 한 사람의 가슴도 제대로 지피지 못했으면서 무성한 연기만 내고 있는 내 마음의 군불이여 꺼지려면 아직 멀었느냐? 안녕하세요? 'FM 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나희덕 시인의 '서시'로 FM 영화음악 문을 열었는데요 서시... 우리 말로, '여는 시'입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계속해서 시를 쓸 사람이 영원한 시작의 의미로 쓴 글이죠. 항상 아이러니해요. 이 끝 방송을 하게 되면 그래... 끝은 시작과 맞닿아 있다 하는 의미에서 이런 시를 골랐어요. 꼭 그 마음입니다. 단 한 사람의 가슴도 따뜻하게 지펴주지 못하고 그냥 연기만 피우지 않았나... 자, FM 영화음악을 듣고 있는 모든 분들을 위해서 오늘 첫 곡 들려드리겠습니다....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 래니 크래비츠, 'It Ain"t Over "Til It"s Over'....

2004년 4월 26일 <정은임의 FM 영화음악> 마지막 방송 오프닝 멘트

창문이 모두 영화 속 창문 장면으로 그려진 건물. 영화학을 하는 사람이 주인일까. '창문으로서의 영화'를 생각하게 한다. 구멍을 내어 바깥 세상을 보는 한 면을 제공하는 창문은 때때로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케케묵은 답으로도 쓰이니까. 그러나... 이 건물은 정말 멋졌다. 그 위에 걸린 하늘도.

2004년 6월 5일 싸이월드 '은임이 다락방'

"모든 사람이 입을 모아 테러리즘을 종식시켜야 한다고 합니다. 거기엔 아주 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테러에 동참하지 않는 것입니다." '노엄 촘스키와의 대화'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책에서, 오늘따라 눈에 띄는 대목이다.

2004년 6월 21일 싸이월드 '은임이 다락방'

예전부터 내게 빗길 운전은 '그림 속으로 들어가기'였다. 빗줄기가 형체를 허물어뜨린 풍경은 움직이는 파스텔화. 이제 나는 그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

2004년 7월 5일 싸이월드 '은임이 다락방'

사실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대부분의 아름다움은 강렬하고 화려하고 찬란할수록 빨리 사그라들고 시들고 부서지지 않나요?

2004년 7월 19일 싸이월드 '은임이 다락방'에 남긴 마지막 글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 특히 아주 젊어서 세상을 떠나버린 사람들이 오래도록 마음속에 묻혀서 아름답게 기억되는 이유. 여러가지가 있죠? 그들은 더이상 실수나 과오가 없을 테구요, 또 배신도 변절도 하지 않을 테니까요. 너무 변하는 세상, 믿지 못할 사람들 속에서 결코 변하지 않을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은 참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10년전 우리 가슴속에 묻힌 후에 그는 한번도 우리를 배신한 적이 없죠. 리버 피닉스. 피닉스라는 그의 성이 참 아이러니하게 느껴져요. 23살. 그때 죽었지만 그렇게 참 불사조처럼 우리 마음속엔 이렇게 오래 살아 남아있네요.

<정은임의 FM영화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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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12 23:52 2004/08/12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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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란 멘트가
앞의 말 뒤에 자동적으로 붙어나올 것만 같다.
마치 '빗길 운전'은 애초에 '조심'이란 단어와 쌍둥이로 태어난 것처럼.
교통방송 및 57분 교통정보가 뇌에 집어넣은 칩이다.

그러나
예전부터 내게
빗길 운전은...
'그림 속으로 들어가기'였다.

빗줄기가 형체를 허물어뜨린 풍경은
움직이는 파스텔화.
이제 나는
그 그림 속으로
들어간다.

** 강원도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





<출처 : 故정은임아나운서의 미니홈피 http://www.cyworld.com/bastian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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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는 아니지만 잠을 못이루는 밤이면...
밤늦게 일하는 날이면, 듣게되던 라디오의 '영화음악'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기억이 난다.

그때는 누구인지 몰랐다.
사고뉴스가 나오는 그날도 누구인지 몰랐다.

마지막날 뉴스에 나올때야 누구인지 궁금해서 인터넷을 뒤졌을때서야...그제서야 누구인지 알았다.



미니홈피에는 벌써 많은이들이 퇴원을 바라는 글부터
고인의 명복을 비는 글까지 많은 글이 쌓여있었다.
그제서야 우리들을 떠나간 그사람에 대한 허전함이 느껴진다.



그녀가 남긴 그 글에서 그날의 사고를 예견했던것일까?
그녀도 자신의 미래를 알고 있었던것일까?



가끔은 세상은 불공평하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하나님의 뜻이겠지...라는 생각으로 그 길에 축복이 있길 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하나님의 축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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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12 23:49 2004/08/12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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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좋아지게 되면서, 사진이 관련된 영화면 무엇이든 보고 싶어졌다.
Hirosue Ryoko가 주연했던 "연애사진"도 그러했고, "...ing"도 물론이었다.

"...ing"는 그 서술적구도나 캐릭터의 설명은 여느 영화와 다를것이 없다. 지극히 평범할정도의 내용과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가지는 가치는 '배가 고파도 배고프지 않고, 옷을 안입어도 춥지 않은' 사랑이 가진 마력에 대한 원초적인 성격을 가장 쉽게 서술하고 있다.

고등학생이며 불치병을 가진 민아...
민아가 죽기전에 사랑이라는 감정을 잠시나마 느끼게 해주고 싶어하는 지독한 모정을 가진 엄마.
그리고, 솔직한 시작은 아니었지만 그렇지 않았지만 나중에야 후회하지 않는 사랑을 하기로 한...그리고 그 행복한 날들을 같이 해준 영재.

이 3명이 알려주는 동화같기도 하고, 마치 순정만화 같기도 한 이 사랑에 대한 영화는 나에게 또 하나의 가르침을 남겨 주었다.




< 출처 : ...ing OST - TRES QUARTO >


민아 : "그 사람 너무 불쌍하잖아.....
사랑하는 사람 먼저 보내고...그게 모야 사랑에 미쳐가지구..."

영재 : "난 되게 행복한 사람같은데...? 그런 사랑 아무나 못하잖아
게다가 그사람 추억 속에서 같이 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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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01 17:09 2004/08/01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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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책방」은 50만부를 넘는 베스트셀러, 「천국의 책방」시리즈의 세번째 작품「련화」를 영화화한 것으로 천국과 지상을 무대로 남녀의 안타까운 사랑을 그린 러브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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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6/24 20:07 2004/06/24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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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ote at 2006/02/05 23:12
오늘에서야 감상완료
평점 : ★★☆

러브레터처럼 1인 2역으로 처음에 스토리가 헤깔렸다ㅡ.ㅡ
다케우치 유코의 팬이 아니라면, 끝까지 보기 힘들지 않으련지...
너무나 평이한 스토리에 일본특유의 환타지성 영화... // 2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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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정리해고로 실직하게된 '쿠라사와 유미(다케우치 유코)'는
아르바이트를 구하러간 출판사에서
'사쿠라이 레이지로(아베 히로시)'라는 베스트셀러 만화가의
담당이 되게 된다.

일본식 온천여관인 '유즈하라'에서 만화를 그리게 되면서 일어나는
헤프닝과 만화가로서의 고뇌,
온천을 운영하는 깐깐한 주인 '유즈하라 마사코'를 통해 배우게 되는 여러가지 교훈이 많은 드라마.


일본드라마의 특징인 '교훈드라마'로서의 가치를 톡톡히 지닌 드라마로서, 일본드라마가 가진 다양한 소재의 한부분을 느낄수 있는 드라마


제 작 TBS
방 영 2003. 4. 13 - 6. 22
감 독 淸弘 誠, 片山 修, 吉田秋生
각 본 테라다 토시오(寺田敏雄)


역시 다케우치 유코...ㅡ.ㅜ 웃는모습이 너무 이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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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6/24 20:01 2004/06/24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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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 산문집은 통상적인 의미의 에피소드를 늘어놓은 에세이가 아니다.
낯선 풍물과 낯선 장소에 대한 기행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차라리 수채화 같은 맑음으로 잔잔하게 작가가 경험한 상황과 사랑이 평이하게 펼쳐져 보인다. 심지어 이 평이함이나 편안함은 때때로 우리들 가슴속에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는데…
이 사진 산문집은 진실하고 정당한 예술 작업을 갈망하는 한 예술가가가 사람의 만남에서 ‘사랑’이라는 일관된 주제를 가지고 프랑스 파리와 노르만디를 배경으로 한 독특한 자전적 사진 산문집이다.
작가의 정신은 치열하고 그의 눈은 더없이 예리하지만 가슴은 따뜻하고 섬세하기까지 하다. 또한 간결한 긴장이 엿보이는 그의 사진에서 우리는 우리 내면을 깊게 응시하는 힘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1995, 작가의 파리 미술전시회에서 비디오 작품을 통해 만나진 18세의 소녀, 이후 7년 2002, 여름. 이제 소녀에서 여인이 되었고 프랑스 파리 국립의과대학병원의 성형외과 전문의사가 된 ‘투안’.

“사진은 나에게 시간의 표충망과 같은 것이고 시간의 미묘한 파동을 추적하고 포착하는 장치입니다. 사진을 찍는다 함은 빠른 시간의 스침 앞에서 놀라운 정지를 이끌어 낸다는 것입니다. 저의 사진은 부재의 확증이라기 보다는 실재의 구체성을 확고하게 드러내는 것에 있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피사체는 마구 흔들리고 요동을 치기도 합니다. 이것이 사진의 리얼리티라고 저는 이해합니다. 사진은 외양을, 모습을, 빛 가운데 드러나는 껍데기를 찍는 것이지만, 사진은 또한 정신이나 생각의 깊이나 본질을 반영하기도 합니다.” -본문중 작가와의 대담 중에서-


<출처 : http://www.kimsangs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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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13 17:40 2004/05/13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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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때 보통 외식을 한다면, 짜장면에 탕수육이 당연했었지만,
내가 첨으로 양식이라는 메뉴로 첨 먹은 음식이 바로 '오므라이스'였었다.(오므라이스도 돈까스와 마찬가지로 일본식 표기로 알고 있다.)

동네 어귀의 자그마한 레스토랑에서 먹었던 그 오므라이스에도 데미그라스 소스가 가득하여, 입안을 즐겁게 해주었었는데...
요즘은 맛있는 데미그라스 소스가 올려진 오므라이스는 찾아보기 힘들어졌단 생각이 많이 든다. 요즘은 그냥 케첩정도 올려주지 않는가...



‘런치의 여왕’은 동네 어귀에 있을 법한 작지만 음식 맛이 좋은 레스토랑 ‘키친 마카로니’를 무대로, 아버지와 함께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4형제와 그곳에서 일하게 된 귀여운 여인과의 갈등과 사랑을 그린 드라마다.

일본인 특유의 전통과 명예를 지켜나가는 장인정신과 화면 가득 채워지는 레스토랑의 맛깔스러운 요리등이 시각을 즐겁게 해주기도 한다.
(드라마보면서 내내 배고픈적은 이번이 첨이었다...설령 식사후에 봐도 말이다...ㅡㅡ;)


일본에는 우리나라와 달리 런치타임이 활성화 되어 있어,
점심시간에 식당을 이용하면, 저렴하고도 맛있는 음식을 푸짐하게 먹을수 있는 메뉴가 많이 있다.
평소에 1200~1600엔정도에 해당하는 식사도 800~1000엔정도면,
해결할수 있는데...일본여행을 한다면, 이 런치타임을 적극활용하는것도 하나의 재미일듯하다.(대부분의 런치세트는 1000엔 미만이다.)



예전에 초밥왕이라는 만화를 봤을땐 그렇게 초밥이 먹고싶더니..
이 드라마를 보고나니, 데미그라스 소스가 가득한 오므라이스가 정말 먹고 싶어졌다^^;

ps. 맨위 가운데 사진은 <다케우치 유코>가 오므라이스를 한입먹고, '오이시이~'를 외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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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4/15 17:42 2004/04/15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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